📘Goodbye 2020
구글 캘린더의 도움을 받아 조금은 늦은 2020 회고록을 적어봤다. 기억이 희미하고 상기하면서 왜곡된 추억을 회상할 수도 있겠지만, 2020을 보내고 2021을 맞이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는 건 이 시간이 아니면 할 수 없기에 소중하게 생각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봤다. 월마다 1~2개의 이야기를 쓰게 될 것 같으니 한 해를 12개 정도의 이야기로 잘 풀어가봐야 겠다.
1월 - 2월
독서실 알바를 했었다. 벌써 1년전 일이라서 잊고 있었던 일이었는데..2020년도 일이었다니 새삼 놀랍다. 아빠의 해외 출장에 마음이 헛헛해지기도 하고, 방학 때 쉽게 쳐질 수 있는 생활 패턴도 잡고, 돈도 벌고자 찾은 아르바이트였다. 그동안 대치동 학원 알바도 해보고 동네 수학학원 보조교사도 해봤었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대면(?)알바가 아니었다. 청소담당을 지원했었는데 당시 실장님 면접 때 여자인 내가 와서 고개를 갸우뚱하셨던게 기억에 남는다. 나름 아침형 인간인지라 사람이 오기전 6~8시 사이에 독서실 모든 공간을 청소기 돌리고 물걸레질을 부지런히 했었다.(부모님이 제일 반대하던 알바였는데.. 생각해보면 은근 말 안듣는 딸인 듯)
그때 청소를 하면서 독서실 위에 놓여진 공시, 어학 책들을 보며, (삼수생이었던 못난 면모를 아직 벗어던지지 못해서 그런지 겨울만 되면 센치해지는 감성때문일수도) 열심히 공부하는 청춘들의 시간이 왜 안타까워보이기만 했다. 오지랖일순 있지만.. 취업시장이 좁아지고, 스펙과 자격증만 바라보게 되고, 좁은 독서실 자리로 향해야한다는 현실이 너무 답답했다. 각설하고 그때 공짜로 받은 자리에서 공부했던 걸 생각해보면 Udacity RL 코스를 열심히 했던 것 같다. TOEFL도 준비하겠다고 옆에 책을 쌓아두긴 했었지만 제대로 공부 안한건 2021에 그대로 업보로 받아 이어지고 있다.(으이구🤪)
오랜만에 가족들과 속초여행을 갔었다. 당시에 코로나가 조금씩 심해지고 있었는데 그땐 “여름까지 코로나가 계속되면 안되는데..”라고 걱정하고 있었다. 왠걸..2020 한 해를 온전히 코로나랑 함께할 줄은 몰랐다.😥 친구들과도 갔었던 속초였지만 가족들과 함께했던 속초는 또 다른 모습으로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타임랩스로 바다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찍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물회는 맛있었고, 겨울바다의 소리는 정말 맑고 시원했다.
사실 2019 겨울부터해서 2월까지 KPMG Ideation이라는 대회에 멋진 분들과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다른 대회보다 달랐던 점은 정말 나에게는 도전
그 자체였기에 더 기억에 남는다. 그 동안 기술적인 성격의 대회들은 대부분 숫자로 표현된 성적으로 판단하는게 대부분이었는데 이 대회는 아이디어 제안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에 엔지니어 마인드보다 기획자 마인드를 배우게 되었던 것 같다. 또한 잘 몰랐던 NLP 분야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였고, 특허라는 분야, 변리사라는 직업에 대한 이야기 등 새로운 세상 이야기 좋아하는 나에게는 진짜 재밌었던 시간이었다. 잊지못할 해프닝이 있던 대회이기도 했는데, 본선 대회 당일 대회장에 도착하자 마자 집으로 돌아가라고 통보(?) 받았던 대회였기도 했다. 혹시라도 밝히고 싶지 않으실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말을 아끼고 내 마음속에 저장하겠지만, 정말 감사했던 점은 함께 해주셨던 팀원분들이 정말 다 멋진 분들이었다는 것이다. 밤을 새워가며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이나 생각들 모두 너무 좋았고 평생 남을만한 따뜻한 추억이 생겼다는게 행복했다.
3월 - 6월
본격적으로 코로나로 인한 대혼란이 시작됐다. 상황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개강이 미뤄졌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처음접하게 된 온라인 수업은 정말 당황 그 자체였다. 등하교 3시간 통학러인 나에게는 시간을 세이브할 수 있는 장점도 있긴 했지만 집에서 하루종일 노트북만 보고 있으면서 “이게 뭐하는 건가..”싶은 생각이 든게 한 두번이 아니었다. 진짜 대학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도 했었다. 그래도 바쁘게 1학기를 잘 보냈고 랩실 생활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아 생각해보니 이때부터 나그네처럼 랩실을 다녔던 생활을 마치고 정식으로 학부연구생으로 인정받아 돈을 받으면서 연구하게 되었다.
종강을 하고 미래연구소 14기 서브튜터를 하게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딥러닝을 공부하게 된 곳에서 서브튜터로 일하게 되었다는 게 정말 신기하고 감사했다. 대학교 가자마자 우연히 보게된 글을 보고 (지금 생각해보면 겁도 없이 혼자 찾아간게 신기하지만) 미래연구소 1기로 딥러닝을 공부했다. 오랜만에 랩장님도 보고 몰라보게 커진 미래연구소 모습을 보면서 괜시리 뿌듯하기도 했다. 사실 메인튜터님이 많이 배려해주시기도 하시고 서브튜터 업무 자체는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지만 돈을 받고 일하는 자리는 항상 긴장하게 되기 때문에 조금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긴하다. 14기 분들 중 완전 입문자를 위한 파이썬 기초 스터디는 따로 혼자 운영해야 했기 때문에 좀 더 긴장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항상 DL 공부 관련해서 INPUT만 했던 입장에서 처음으로 OUTPUT을 하게되는 도전적인 경험이었고, 지식적인 면으로나 태도적인 면으로나 성장할 수 있었던 큰 도약점이 됬었다. 부족한 서브튜터를 만났지만 열심히 공부하셨던 14기 분들이 모두 성공하셔서 나중에 커뮤니티에서 만나뵈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7월 - 8월
여름방학에 역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선 정말 다이나믹했던 2020 국제창작자동차대회 PostNomad팀으로 참가한 이야기.🦈 4학년 분들의 졸업프로젝트였지만 운좋게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제어팀으로 합류할 수 있었다. 후에는 딥러닝 테스크 비중이 높은 비젼팀으로 옮겨가야만 했지만. 그동안은 학교내에서 팀을 꾸려서 대회에 나가기보다는 대외 스터디나 모임에서 만난 분들과 프로젝트들을 했었기 때문에 또 다른 느낌이었다. 대형학과이다 보니 사실상 같은 학과여도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졸업할 때까지 모르는 동기도 많다. 평소에 아싸생활을 하는 나로써는 더더욱 학과 사람들이랑 친해질 기회가 없었는데 처음으로 기계과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 회고하는 이 시점에서는 대회 결과도 아쉽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랩뷰만 써야하는 답답함, 협업하면서 느꼈던 어려움과 실망했던 점들도 많지만, 진짜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지하 작업실에서 회의하고, 함께 공구들을 나르고, 덥고 습한 K-City에서 다같이 고생하고 고민했던 모든 시간들이 감사하다. 이 회고록을 빌려 고백을 하자면.. 우리 팀에게 조금 더 잘하지 못한 게 죄송하다. 다들 열심히 하시고 항상 나를 배려해주셨던 것 같은데 그에 비해 나는 잘 따라가는 팀원은 아니었던 것 같다.
랩실 연구를 비롯해서 TOEFL 공부까지 하느라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사실 이때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서 후에 고생하게 된 건 안비밀이다. 항상 느끼는 것이긴 한데 나는 한가지 일을 집중해서 끝내는 능력이 아직도 부족한 것 같다. 이에 더하여 2020 Korea Health Datathon에 참가하여 부비동 데이터셋으로 최종 4위를 했었다. NSML 플랫폼은 할말하않이긴 하지만 꾸준히 데이터톤 경험을 갖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2019 대회에도 참여했었는데 그때보다 발전된 성적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다는 버킷리스트가 생겼다. 그래서 하나씩 뭘 준비해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 체력을 길러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에 더해 코로나로 떨어진 활동성을 보충하고자 등하교를 따릉이로 하기 시작했다. 가는데에만 2시간 걸리는 여정이었지만 한강을 따라 가는 길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충분히 좋은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다들 미친 짓(?)이라고 만류했었고 나도 반신반의 했었지만 막상 해보니 죽을 정도는 아니었고 자전거 타고 보는 한강은 다리아픈 것 따위 다 잊게 만들정도로 예뻤다. 아침은 아침대로, 저녁은 저녁대로, 맑으면 맑은대로, 흐리면 흐린대로. 때로는 상수나들목 공사때문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길은 항상 찾으면 되는 거였다.
9월 - 10월
2학기도 여전히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학기중에는 거의 수업에 집중하다보니 딱히 회고록에 적을 내용이 없는 것 같아서 한빛미디어에서 “나는 리뷰어다”로 참여했던 경험을 적어볼까 한다. 리뷰어로 활동을 하면서 2개의 도전이 있었다. 첫째는 글쓰는 것 자체에 대한 도전이었는데, 예전에는(그러니까 고2때 까지만 하더라도) 글을 쓰는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름 글을 잘 쓴다고 인정도 받았던 것 같은데 이후에 딱히 글을 쓸 기회가 없었고 쓰지 않다보니 리뷰를 쓴다는 것 자체가 어색했다. 그리고 “독후감”과는 다른 목적이 있는 “리뷰”라는 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출판사에서 책을 주면서 나에게 리뷰를 쓰기를 원하는 니즈는 분명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책의 내용이 잘 어필이 되길 바라는 것일터였다. 그러면 단순히 책의 장단점을 나 혼자 판단하고 즐기고 끝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번째로는 빠르게 기술서를 봐야한다는 도전이었다. 사실 IT전공도 아니고 원래는 1개의 책도 적어도 2~3개월을 봐야하는 거북이 속도인데 리뷰를 하려면 1달에 1권을 무조건 다 보고 리뷰까지 완성해야 했다. 몇개의 책들은 사실 다 보지도 못하고 리뷰 적기에 급급했던 것도 사실이다. 제대로 리뷰어로 활동하지 못해 관계자분들께 죄송하다. 그래도 몇몇 리뷰는 제대로 적었다는 것에 스스로 조금 위안을 삼아본다.
11월
지금까지 인생의 경험들 중에 최악과 최고를 다 뽑으라고 하면 2020.11월에 다 있다. 좋은 것부터 먼저. 우선 최고는 내 인생 처음으로 학회에서 내가 한 연구를 가지고 발표를 완성도 있게 마무리 할 수 있었고 인정도 받아서 우수논문상까지 받게 된 경험이다. 진짜 학회 발표 전 리허설하는 랩미팅에서 울면서 나가기도 했었고 발표 전날까지도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아 정말 힘들었다. “힘들었다”라는 4글자로 밖에 표현 못한다는 게 억울할 정도로 최고의 스트레스를 받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진짜 주변에 천사들을 심어 놓으신 것인지 기적적으로 도움도 받고 몇일 밤을 새서 어찌저찌 마무리 할 수 있었고 IPNT에서 구두발표도 잘 마무리하여 우수논문상도 받게되었다.(지금생각해도 기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진짜 힘들었던 만큼 최고의 성취감은 말로 할 수 없었다.
다음으로 최악의 경험은 사실 최고의 경험과 관련이 깊다. 앞서 적은 “최고의 스트레스”가 복선이었다. 학회를 마치고 체력이 바닥으로 떨어질대로 떨어졌고 긴장은 완전히 풀어진 상태에서 몸이 엄청 아팠다. 감을 먹고 체한 탓도 있었지만 몸이 정말 아팠고 힘이 빠지면서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생 처음으로 자다가 새벽에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에 갔던 게 최악의 경험이지 않나 싶다. 근데 유감스럽게도 구급대원분들이 오시면서 급속도로 괜찮아져서 정말 난처하고 민망했다. 나중에 새벽 4시쯤 엄마랑 응급실을 나와서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때의 일은 가족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어서 지금도 아빠는 잊을만 하면 이야기를 하시는데 하지말라고 장난스럽게 말을 하면서도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웃프긴 하지만 이 일 이후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감”은 금지어가 되었다.
12월
사랑하는 양가의 조부모님들이 몇년전만 해도 다 살아계셨다. 하지만 근 2년 정도 매년 겨울에 사랑하는 분들을 떠나보내게 되었다. 외할아버지, 친할아버지, 그리고 외할머니까지. 올해 후반에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신 외할머니가 결국 우리곁을 떠나셨다. 4분의 할머니 할아버지 가운데 가장 사랑의 표현도 아끼시지 않고 항상 전화도 먼저 걸어주셨던 멋진 할머니였다. 지금 이렇게 “할머니 사랑해요”라고 말하던게 이렇게 그리워할 것이었다면 살아계셨을때 왜 그렇게 어색해하고 표현하기 부끄러워 했는지. 코로나로 인해 좋았던 점 하나는 장례식에 손님들 없이 식구들끼리 할머니를 추억하면서 얼마나 멋진 분이셨는지 되새길수 있어서 좋았다. 진짜 멋진 분이셨다.
BNM2h
2020년도에 감사했던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 나름 뿌듯하고 보람찬 시간들을 회고할 수 있도록 도와준 많은 분들이 있었다. 스터디를 통해서 만나는 인연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많은 스터디에 참여해보고 도전 받을 수 있는 좋은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가장 애정가는 스터디는 아무래도 BNM2h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 사실 가장 애정가는 이유 중 하나는 아무래도 내가 만든 스터디였기에 가장 책임을 느꼈고 가장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가장 노력했음을 나 스스로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는 진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2019년도에 Kaggle KR에서 스터디 리더를 뽑는다는 글을 보고 마침 캐글에서 Connect-X
라는 강화학습 대회가 베타수준으로 시도하기 시작했던 때라 “내가 한번 캐글 강화학습 스터디 리더가 되어보자!”라는 생각과 패기로 시작했던 거였다. 패기는 패기였던 걸로.. 그렇게 시작했으나 함께할 팀원분들이 모집되지 않아 그냥 한 순간의 불꽃으로 끝날 뻔 했다. 다행이도 다른 리더분들 중에 나와 같은 처지였던 분이 계셨었고 감사하게도 같이 공부하자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셔서 BNM2h라는 스터디가 생기게 되었다!🙌
그때 그때 마다 인연이 되는대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스터디에서 강화학습을 공부하고 있다. 최고의 스터디라고 자랑할 순 없지만 최애
스터디라고는 할 수 있다. 아직도 강화학습이라는 분야에 대해, 스터디에서 함께 공부하는 방식에 대해, 스터디 매니징하는 것에 대해, 감사함과 겸손함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한참 모자른 애송이이지만 매주 스터디에 나와주셔서 나에게 성장할 기회를 주고 그런 시간들을 함께 보내주시는 BNM2h 스터디원분들은 천사들이신 것 같다. 나도 그런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함께 성장하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느낀 한 해였다.
마무리
물론 당연히도 여기에 적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이야기들은 열정을 담기도 하고, 아쉬움을 담기도 하고, 기쁨을 담기도 하고, 슬픔을 담기도 한다. 그 이야기들은 지금의 나의 마음이나 기억 속 어딘가에 잘 살아있겠지.
멋있는 개발자분들의 회고록 같은 것을 기대했으나 적고나서 읽어보니 아직은 어디에 내놓기 부끄러운 새벽감성의 회고록이니 그냥 조용히 블로그에 남기기로 생각했다.😂
잘가요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