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또를 마치며
글또 활동 마무리 회고글을 작성하는 날이 왔네요.
2022년 5월
, 석사 1학기를 마무리하던 즈음, “글을 쓰는 것이 나를 성장시킬 것이다”라는 믿음 하나로 글또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2025년 3월
, 사회 초년생이 된 지금, 그 긴 여정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사실 7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 이후의 기수까지 계속 참여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매 순간, 크고 작은 고민과 방황 속에서 나를 붙잡아줄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럴 때마다 글또가 제게 하나의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어지다 보니, 어느덧 관성이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지금의 제가 되었네요.
“글을 쓰는 또라이가 세상을 바꾼다”
세상이란 주관성과 객관성이 공존하는, 나를 둘러싼 환경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좀 더 주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세상, 즉 나
라는 세상의 무대를 글로써 담아내며, 저만의 방식으로 나의 세상
을 바꿔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분명히, 제 세상을 바꿔온 사람입니다.
이제, 그 세상을 바꿔온 제 여정을 회고하며 되돌아보려 합니다.
시작
서두에서도 언급했듯, 글또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연구 생활을 시작하면서 느낀 답답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 당시의 심정을 조금 더 솔직하게 풀어보자면—사실 제가 기대했던 연구실 생활과는 꽤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흔히들 말하길, 대학원생이 자신에게 완벽하게 맞는 연구실을 찾으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고도 하잖아요. 안타깝게도 저는 그런 운 좋은 케이스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른 방식으로 그 답답함을 풀 방법을 찾기 시작했죠. 그때 제 머릿속에 있었던 생각은 단순했습니다.
“내가 관심 있는 연구 주제를 깊이 파고들 수단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수단’은 단지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한 도구나 자료가 아니라,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정리하고, 나아가 다른 연구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 만큼 내 연구를 다듬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마치 공부할 때, 인형 같은 가짜 청중을 앞에 두고 말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듯— 그렇게 제 생각을 말로 꺼내고 정리해줄 대상이 필요했습니다. 그 역할을 해준 게 바로 ‘글또’였죠.
시작은 언제나 특별한 듯, 특별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든 처음이 있기 때문에 이후가 존재하고, 그래야 비로소 역사/스토리가 생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언제 시작했는가’는 분명 의미 있는 포인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시작의 순간은 결국 그 이후의 과정이나 끝맺음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순간’일 뿐인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시작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게 하는 건 오히려 새로운 상황과 이유들이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그 때의 시작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당시 느꼈던 답답함과 불안함은 글또를 통해 성장하면서 많이 해소할 수 있었고, 이제는 또 다른 고민과 어려움을 글또라는 매개를 통해 풀어가고 있는 제 자신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과(정)
블로그 세상 속에서 성장
솔직히 말하자면, 2주마다 돌아오는 글 마감은 생각보다 꽤 타이트한 기준이었습니다. 마감일은 늘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고, 그때마다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글감들을 단시간에 정리해서 꺼내 놓아야 했죠. 그 과정은 마치 재촉하는 채찍질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 마감일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마 저는 어떤 글도 끝까지 써내지 못했을 것이고, 제 블로그는 지금쯤 먼지만 쌓여가는 공간이 되어 있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또의 마감은 단순한 일정이 아니라, 저를 계속해서 쓰게 만든 강력한 리듬이자 동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지난날을 회고하는 글을 블로그에 남길 수 있는 것. 그건 결국, 마감이라는 틀 안에서 꾸준히 써왔던 시간들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요.
가장 정적인 활동 중에 가장 동적인 활동—그게 바로 글쓰기
였고, 저에게는 가장 잘 맞는 솔루션이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겉보기엔 아주 정적인 활동처럼 보이지만, 돌아보면 그 어떤 것보다 내면에서는 가장 활발한 정신적 움직임이 일어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저를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었죠.
사실 ’글’이라는 건, 공대생인 저에게 익숙한 영역은 아니었습니다. 배우거나 훈련할 기회가 많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제 성향 자체가 내적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좋아하다 보니, 글쓰기는 오히려 저에게 딱 맞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감상적인 글만 쓰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마치 봇처럼 기술적인 내용만 정리한 글들도 썼습니다. 하지만 그런 글을 쓰는 과정 속에서도, 저는 성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스스로를 속이는 걸지도 모르지만, 글을 정리해 쓰는 동안 내가 이 내용을 정말 잘 이해하고 있구나라는 느낌, 혹은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용기를 얻곤 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놀랍게도 글또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글쓰기를 보조해주는 수단들이 넘쳐나죠. 때로는 저보다 더 글을 잘 쓰는 ChatGPT 같은 존재를 보며, 인간이 글을 쓴다는 행위의 본질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보다는, 내 생각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어요. 인공지능을 통해, 제가 표현하고 싶은데 표현하지 못했던 언어적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고, 덕분에 제 고유의 생각을 더 명확하게 전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실제로 이제는 블로그 글을 쓰기 시작할 때 한쪽에 ChatGPT 창을 키고 시작합니다.
나와 같은 사람들
솔직히 글또 초반에는, ’글을 쓰는 것’에만 이 커뮤니티의 진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초반에는 서울에서 조금 벗어난 수원에 살다 보니, 커뮤니티의 다른 분들을 직접 만나기 위한 시간을 내는 것 자체도 부담스러웠고요. 하지만 기수가 거듭될수록, 글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크고 풍성한 커뮤니티로 성장했고, 무엇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 생각을 나누고 대화하는 시간이,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아니, 때로는 그보다 더 큰 인사이트와 성장의 순간을 안겨주었습니다.
어느 순간, 내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고 느끼고, 에너지가 바닥나고, 스스로 만들어낸 틀 안에서 나를 스스로 가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그 순간마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영감을 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멈춰버릴 뻔한 제 흐름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고, 사회적인 활동에 부담을 느끼거나 때로는 회피하려는 성향도 강한 편입니다. 그런 저에게 글또는, 오히려 비슷한 에너지 레벨과 결이 다른 반짝이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었던, 아주 특별한 커뮤니티였습니다.
끝
이제 글또 10기, 그리고 글또
라는 커뮤니티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제 블로그의 최다 방문자이자 가장 열심히 읽는 독자가 바로 접니다.
꽤 자주 들어와서 글도 다시보고 수정하기도 하죠. 사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방문자 수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것 같아서, 아예 방문자 카운팅 기능도 꺼두었어요. 그래서 제 블로그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마치 나만의 소중한 도토리처럼, 제 둥지 안에 고이 간직된 그런 존재입니다.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늘 있지만, 정작 누군가의 평가를 받는 건 아직도 두렵고 조심스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글을 쓰는 자체에 집중하고,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한 방식을 택해왔던 것 같아요.
글을 쓰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글을 써온 저는, 제가 살아온 세상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글또의 매 기수 시작마다 다짐했던 것처럼, 마감과 글의 퀄리티를 챙기는 일은 여전히 저에게 이루어야 할 목표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마지막 회고를 쓰며 제 개인 캘린더에 2주 간격으로 글 마감일을 등록해 두었습니다.
글또가 끝났다고, 글쓰기가 끝나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잇기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글또에서 항상 시작할 때와 마무리할 때 느꼈던 마음들, 그리고 중간중간,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했던 시기에 적어두었던 작은 일기들을 한데 모아 정리해보았습니다. 그 순간의 감정과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긴 기록들입니다. 때로는 방황했고, 때로는 나아갔으며, 언제나 그 안엔 조금씩 성장해온 제가 있었습니다.
